퇴사 후, ‘1인 기업’으로 전향했다
※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1인 기업’으로 전향한 과정을 설명하는 글입니다. 이 글을 통해 ‘하던 일을 그만두고 무조건 꿈을 좇아라’는 식으로 말할 의도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퇴사를 한다는 건 구체적인 계획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리스크까지 감내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2017년, 내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기로. 이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수없이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반복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5년 후, 1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이길 원할까?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 이런 결정이 나에게 주는 영향을 무엇일까?
끊임없이 분석하고 고민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결단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다. 안정적인 직장과 매달 정해진 날에 나오는 월급, 직장이 주는 소속감. 이들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월급은 마약과도 같다’는 말이 있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간결하면서 정확하게 월급을 표현한 문장이다. 진심으로 감탄한다.
무슨 일이든지 인간은 자기가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모른다. 유학생일 당시 한국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유학을 온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당시엔 몰랐다. 그 사람들이 영국에 오기까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다는 것을.
유학하는 동안 최대한 많은 직무 경력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지겨울 정도로 열심히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온라인으로 인턴십 공고를 검색하고 CV와 커버레터를 쓰고 쉬는 날에는 인터뷰 스크립트를 작성한 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소리 내서 연습했다.
패션·아트 쪽은 유급 인턴십을 찾기 힘들다. 남들은 그까짓 거 무급 인턴십이지 않냐고, 쉽게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우습게 보겠지만 난 그 기회를 얻기 위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했다. 내가 지원했던 인턴십은 한국어를 한다는 걸 특별히 플러스 요인으로 쳐주는 곳이 아니었다. 영국인, 유럽인들과 같이 동등한 입장에서 지원했다. 내가 그들보다 영어가 부족하다는 걸 알았고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연습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중에 유학 시절을 되돌아봤을 때, 취업하고 나서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았을 때 ‘그때 열심히 할 걸…’ 하면서 스스로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시 영국으로 오기 힘들 것이란 걸 알았고 내가 누릴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다.

다양한 곳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인턴으로 일하면서 ‘내가 이런 일을 할 때 즐거워하는구나’, ‘이런 업무는 내가 거뜬히 해낼 수 있구나’, ‘이런 일은 내가 어려워하는구나’ 등. 나의 적성과 능력, 흥미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아갈 기회였다. 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업무 이외에도 근무 환경과 분위기, 상사 스타일 등 여러 요소를 관찰할 수 있었는데 가족같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회사도 있었고, 직원들을 닦달하고 끊임없이 마이크로매니지(micromanage)하는 상사를 보면서 내가 그곳에 일시적으로 머무는 인턴이라는 사실을 천만다행으로 여긴 적도 있었다. 여러 인턴십을 거치면서 깨달은 것은 (머리로는 어렴풋이 알았지만) ‘꿈같은 회사, 완벽하게 내 맘에 드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였다. 그 회사를 얼마나 ‘오래’ ‘잘’ 견딜 수 있는가 아닌가로 나뉠 뿐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인턴십을 했던 회사에서는 정직원 못지않게 업무를 받아서 일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사무실로 출근하던 날, 날씨는 화창했고 햇살과 나무들은 아름다웠다.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데드라인에 쫓겨 일하는 내 모습이 문득 가엽게 느껴졌다. ‘하루하루가 이런 패턴이라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햇살을 느끼는 자유. 자연을 즐기는 자유. 이런 건 돈 내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데… 나에게 공짜로 주어진 아름다운 것들을 내 맘대로 즐길 수 없다는 사실에 우울해졌다. 회사가 정한 규정에 묶여서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삶. 졸업 후에 이런 삶을 살게 될 것을 생각하니 답답했다.
석사를 마치고 한국에 7개월 정도 머물면서 휴식과 안정을 취했다. 한국에 있으면서 가장 부러웠던 사람이 우리 언니였다. 언니는 6살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면서 영어교육학 박사과정을 밟는 학생이기도 하다. 언니의 직업은 영어 선생님인데 집이 언니의 일터였다. 학생들이 언니 집으로 오면 영어를 가르치고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이 되면 조카를 직접 데리고 온다.
집에서 일하는 언니는 출퇴근 시간에 지옥철을 경험할 필요가 없었다. 일하다가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땐 바로 옆방에 가서 편안하게 두 다리 쭉 뻗고 누워서 쉬었다. 내가 일할 땐 고작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잠시 눈 붙이는 게 다였는데. 나도 언니처럼 자유롭게 일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곳에서.

한국에 있는 동안 비자를 받아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본격적으로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전공에 맞는 포지션에 모두 지원했다. 솔직히 말하면 대단한 곳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매일 긴장 상태로 살다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부서질 거란 걸 너무 잘 알았다. 간신히 건강을 회복해서 왔는데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남의 회사를 위해서, 나의 건강까지 잃어가면서 일하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누구나 우러러보는 대기업에 들어가서 번지르르한 잡 타이틀을 달고 쉼 없이 일하는 것보다 차라리 단순노동을 하면서 적당히 돈 받고 스트레스 덜 받으며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난 내 건강과 행복이 더 중요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편안하게 쉬는 시간이 훨씬 중요했다. 구직활동 끝에 글로벌 리서치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처음 3개월은 좋았다. 일주일에 두 번 재택근무와 칼퇴근이 가능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괜찮았다.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깨달은 한 가지가 바로 ‘인간은 변화를 싫어하는 동물’이라는 것. 인간은 자기에게 익숙하고 쉬운 것을 선호한다. 입사한 지 1년 정도 지나자 삶에 안주하고 현재에 머물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부서로 옮겨볼까도 생각했다. 부서에 공석이 나면 내부 지원자를 우선 선발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다른 팀으로 옮길 수도 있었다. 사실 그렇게 해서 부서를 옮기는 사람들도 많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그 일을 하게 되면 과연 좋아할까? 해당 업무가 나에게 맞을까?
대답은 ‘No’였다. 직장에 다닌 지 1년도 되지 않아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 화창한 날, 인턴으로 일할 때 느꼈던 감정과 예상들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오피스 블록에서 컴퓨터 스크린을 바라보며 9시부터 6시까지 갇혀있는 삶.
의미 없는 회사 업무에 나의 소중한 시간을 쓰는 게 아까웠다. 고여 있는 물이라는 느낌. 앞으로 전진하는 게 아니라 계속 한곳에 머물러 있는 느낌. 시간의 노예,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느낌. 다른 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다를 건 없어 보였다. 비슷하거나 아님 더 안 좋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내 인생이 이런 식으로 계속 소모된다면, 남(회사)을 위해 일만 하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게 미래의 나의 삶일까? 지옥철을 경험하며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저녁 먹고 피곤에 절어서 잠들고… 주말에는 집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다시 월요일이 되면 출근하고… 내가 그렇게 즐기던 문화생활은 어디로 갔을까.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 거기다가 내가 가보지 않은 길,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데 점점 겁쟁이가 되어 갔다.

내가 그동안 쌓아온 경험, 지식, 스킬들이 아까웠다.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 인생을 사무실에서 주야장천 허비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때가 왔음을 느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챕터를 생각해보아야 할 때.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의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다. 그리고 내가 찾은 대답은 이거였다.
시간의 노예가 아니라 내가 시간을 장악하고 싶다. 자유.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나도 안다. 꿈 같은 소리라는 걸. 그래도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주말에도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물었다. 성향, 관심사, 가치관, 장점, 부족한 점, 삶의 목표 등을 상세하게 분석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나만 볼 수 있는 사적인 블로그에 평소 아이디어뿐 아니라 현실 가능성과 관계없이 막연하게 하고 싶은 일들을 메모하곤 했다(지금도 하고). 그동안 블로그에 적어 놓은 글들을 다시 한번 쭉 훑어보았다. 거기에 적힌 내용들을 정리해보니 대략 6가지로 추릴 수 있었다.
- 패션/아트/디자인/라이프를 주제로 글 쓰는 사람
-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
- 강의/강연하는 사람
- 큐레이터
- 트렌드 예측 전문가
-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진행자
난 내가 아는 지식과 정보를 남들에게 알려주는 걸 좋아한다. ‘과거의 나쁜 경험조차도 현재 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누군가 말했다. 오래 살진 않았지만 그동안의 경험과 그것을 통해서 얻은 교훈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멘토링도 하고 싶었다. 결국 2019년, 대학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을 상대로 멘토링 프로그램 운영 중이다.
또한 학교에서 패션 마케팅과 큐레이팅을 전공할 때 즐겁게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몰랐거나 새로운 걸 알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겼던 거 같다. 논문, 아티클 등 여러 가지 자료들을 읽고 리서치하는 부분이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어렵게 쓰인 아카데믹한 지식과 정보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전달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2019년에는 다양한 온라인 프로그램을 런칭해서 내가 가진 지식을 전달하는 일을 한다.
이렇게 대략 큰 틀이 잡혔고 현재로서는 이 범위를 크게 벗어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일을 할 가능성도 여전히 열어두려고 한다. 위에 저렇게 적어놨지만 막상 해봤을 때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더 좋아할 수도 있다. 비유하자면 지금 나의 상태는 형태가 잡히지 않은 물체라고 볼 수 있다. 지속적으로 다양한 분야를 시도해보고 나의 가능성과 적성을 탐구해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형태를 잡아갈 것이다.

내가 가진 장점과 단점
장점
난 추진력이 강한 편이다. 한번 목표를 세우면 그걸 달성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반드시 옮기려고 한다. 분명한 목표가 설정되면 그에 맞게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메모광 기질도 있는데 모든 걸 꼼꼼하게 기록하고 체계적으로 조직하는 능력이 있다. 긍정적인 마인드도 장점 중의 하나.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 경험을 통해 내가 깨달은 점, 배운 점을 찾아내서 인간으로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괴로움을 승화(?)하는 편이다. 이외에도 공감 능력과 성실함 등이 있다.
단점
솔직하게 말하겠다. 난 예민한 성격을 갖고 있다. 난 남들이 느끼지 못하고 쉽게 지나치는 미묘한 것들을 잡아낸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 편이다. 사람들과의 만남에 있어서도 일대일 만남을 선호한다. 사적인 만남에서 사람 수가 4명 이상이 되면 자연스럽게 말수가 적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말을 할 때면 내가 내뱉은 단어들이 허공에 의미 없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을 만나기 싫어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무척 중요하다.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많은 영감을 받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기 때문에 이런 만남은 정말 소중하다. 다만 나만의 한계가 있는데 남들보다 그 한계가 일찍 와서 쉽게 지친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홀로 생각을 정리하고, 사색하는 시간.
또한 혼자 또는 소수의 사람과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여럿이서 일하는 것, 그룹워크가 주는 장점에 대해선 너무나 잘 안다. 단지 내가 일하는 스타일과 내 성격에 맞지 않을 뿐이다. 외향적인 사람이 되어보려고 목소리를 크게 내보고 많은 사람을 만나러 다니는 등 부단히 노력했던 적이 있다. 시간이 흘러 내가 내린 결론은 타고난 천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다니는 건 일종의 고문과도 같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녹초가 되었고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예민한 성격이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경험을 쌓아왔던 분야가 (마케팅,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사람들을 계속 만나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이 요구되었고 이런 업무들을 해내려면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일하기가 좀 더 수월했을 뿐이다.
사실 예민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장점 또한 많다. 난 상대방의 마음과 의도를 쉽게 읽어내고 남을 배려하는 편이다. 이런 예민함이 앞으로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 인간관계가 좁아질 수도 있다는 염려는 트렌드 스터디 그룹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사람과의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해결되었다.

유튜브 채널
퇴사하기 전 충분한 리서치를 한 뒤 앞으로 5년간 어떤 주제의 콘텐츠를 제작할지 큰 틀을 잡고 장단기 계획과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웠다. 어떤 플랫폼을 사용할지도 생각해보았다. 특정 서비스를 처음부터 제공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 스킬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 다닐 당시 이미 블로그를 운영했지만 그걸로 충분치 않다고 느꼈다. 텍스트 위주의 콘텐츠보다는 이젠 영상의 시대가 온다는 걸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알았다.
디자이너로 일하는 친구도 영상을 제작하는 게 더 영향력이 있을 거라며 비디오를 만들어볼 것을 추천했다. 당시에 비디오 에디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까짓것 배우면 되지’라고 생각했고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한 달간 영상 제작에 대한 온라인 강의를 들었고 그로부터 한 달 뒤 유튜브에 비디오를 게시할 수 있었다.
크리에이터
크리에이터, 이걸 나의 새로운 직책으로 정했다. 이 단어가 모호하다는 거 나도 안다. 주변 사람 뿐 아니라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으로부터 나의 직업에 대한 질문을 받을 것이다. 솔직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한 단어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게 쉽지 않다. 온라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 외에도 전시 기획도 하고 앞으로 강의도 할 계획인데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하고자 하는 일을 포괄적으로 지칭할 수 있는 단어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크리에이티브한 분야에 있으면서 글, 비디오, 온라인 클래스 등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내는 일이니 크리에이터라고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크리에이터라고 말했을 때 여전히 상대방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면 뭐 어쩔 수 없지. 사실 뭐라고 불리든 상관없다. 그저 누군가 물어보면 대답해줄 단어가 필요했던 거니까.
그리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확신과 자신감이 들었을 때 직장을 그만두었다. 변화를 위해 결심을 했고 그것을 실천하는 용기를 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많이 포기해야 했던 건 경제적인 부분이었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 이미 필요한 건 다 있고 물건에 집착하는 편이 아니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문화생활을 하고 싶을 땐 무료 이벤트와 뮤지엄 아소시에이션 카드(Museum Association Card)를 활용한다. 매년 멤버십 비용을 내면 영국에 있는 뮤지엄과 갤러리를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유료 전시 포함).

혼자 일하기 시작한 뒤로 매일 시행착오를 하며 배운다. 앞으로도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워드프레스 웹사이트에 팝업 창 하나 띄우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여러 플러그인을 실행해봤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무엇이 잘못된 건지 다시 검색해서 다시 시도해보고… 이렇게 하다 보면 하루가 그냥 지나가 버릴 때도 있다.
비디오를 편집할 때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강의를 들었지만 확실히 직접 만들어볼 때 실력이 느는 것 같다. 원하는 효과를 넣으려면 여전히 튜토리얼 영상을 검색해서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게 싫지 않다. 온전히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해 이런 과정을 겪는 것이다. 지루하고 느리게 느껴질지라도 언젠가 이 모든 경험이 자산이 될 것을 안다.
한국에 가면 다양한 주제로 오프라인 강연에 도전해볼 계획을 세웠다. 커피숍이든, 복합 문화 공간이든, 대학교 등 어디든 가서 해볼 참이었다. 그래서 작년부터 한국에 있는 대학교에서 마케팅 수업을 맡아서 강의를 시작했고 이외에도 다른 대학교에서 ‘디자인/패션/공예/리테일 트렌드’를 주제로 특강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얻었다.
또한 전 세계의 사람들로 독자층을 넓힐 계획이 있다. 그것의 첫 출발이 유튜브 비디오인데 영어로 제작하고 영어/한국어 자막을 넣는다. 지금은 『영국에서 패션 마케팅 공부하기』 이북을 중국어로 번역 완료했다. 이번 해에 중국 학생들을 상대로 배포할 예정이다. 매일 스스로에게 말한다. ‘때가 온다, 나의 진가를 발휘할 날이 온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매일 신나는 것만은 아니다. 24시간 일 생각이 떠나지 않을 때가 많고 혼자 일하기 때문에 스스로 계속 동기부여(self-motivated)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는 건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사실 이런 건 퇴사하기 전에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 감내해야 함을 안다.
진심으로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물가와 집세 비싸기로 소문난 런던에 잠잘 곳이 있고 신선한 식재료를 살 정도의 돈이 있으며 사지 멀쩡하게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두 눈이 있다는 것. 거기다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분명히 알고 그걸 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것. 이런 삶을 살 수 있다는 거 정말 흔치 않다. 정말로.
원문: DESIGN BUTTER